[아르떼 칼럼] 편안한 사람이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는 것, 예술

입력 2023-10-20 17:56   수정 2023-10-21 00:34

뱅크시가 인천에 왔다. 파라다이스시티에서 그 유명한 파쇄된 작품 ‘풍선 없는 소녀’가 전시 중이다. 몇 년 전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의 일은 전 세계에 화제가 됐다. 작품이 15억원에 낙찰되자마자 액자 속 장치에 의해 파쇄되는 게 생중계됐으니.

자본주의에 던지는 ‘각성의 돌’이었으나 그것은 돈이 됐다. 몇 년 후 재경매에서 300억원이 넘는 낙찰가로 다시 큰 화제가 됐다. 예술도, 예술계도 이해하려고 하면 머리 아프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배워갈 뿐. 그래서 예술은 여유가 있어 누리는 게 아니라 굳이 애써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유연해지기 위해, 이 각박한 세계에서 더 잘 살아남기 위해.

“예술은 불안한 자들을 편안하게 하고, 편안한 자들을 불안하게 해야 한다.”

뱅크시의 이 말을 참 좋아한다. ‘그들만의 리그’라고 오해되는 예술은 어쩌면 예술가들이 방조한 것인지 모른다. 예술이라는 아름답고 특별한 성에는 아무나 들어올 수 없다고, 알맞은 교양과 수준을 갖춰야 한다고.

하지만 예술은 인류가 시작된 지점부터 함께해왔다. ‘존재의 증명과 표현’, 그것이 예술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본능과도 같다. 예술은 아주 다양한 형식과 형태로 변주되며 끝없이 “거기 누구 없소, 나 여기 있소!”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열린 여성 노숙인을 위한 쉼터에서 예술 수업을 했다. 처음 강의 요청이 왔을 때는 거절했다.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조금 불편했다는 게 맞겠다. 불편함.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외면한다. 누군가 힘든 걸 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서, 나도 지금 내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아서, 산다는 건 다 그런 것 아니겠냐며 애써 못 본 척하는 것이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예술에는 차별이 없다. 그림 한 점 앞에서 우리는 모두 초심자이므로 누구와도 평평하게 만날 수 있다.

눈앞의 생존에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예술이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노숙인들을 변화시킨 인문학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그들이 가져야 할 인권의 시작은 인문학에서 비롯됐는지 모른다. 세상의 모든 공부는 그 행위 자체가 갖는 힘이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눈을 빛내며 귀 기울이는 태도가 공부다. 상대를 존중하는 것, 생각을 길어 올리는 것, 나를 돌아보는 것, 모든 공부는 나를 사랑하는 시작점이다.

마스크를 눈 아래까지 덮어쓴 중년의 여성이 그림을 보고, 이런 글을 썼다. “저 그림은 꼭 나 같다. 그냥 나는 혼자가 좋다고, 사람들이 싫다고만 생각했는데, 저 그림처럼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그런 날이 올까, 꼭 왔으면 좋겠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위로와 치유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인간의 영역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런 마음이 충만하거든 신이 잠시 내 곁에 머무는 순간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예술을 통해 만난 분들은 모두 그 이야기를 한다. 서로의 진심에 끄덕끄덕 공감해주며 뭉클해하는 순간, ‘신은 다양한 얼굴로 우리 곁에 머무는구나.’ 가슴이 뜨거워진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림 한 점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이 신기해서, 고고한 줄로만 알았던 예술이 우리 삶 속으로 스미고 번지는 것이 너무 신비해서 계속하게 된다. 불안한 사람들이 조금 편안해지고, 편안한 사람들이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진짜 예술의 가치가 아닐까. 그렇게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수용해주는 것. 예술이 주는 소통과 참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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